본문 바로가기
정보/일반 정보

대공황 경제위기에 대하여

by 오브_ 2023. 2. 7.

 

 

 


현재 우리는, 물가가 많이 상승하여 인플레이션이 왔고, 금리가 많이 올라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과거 가장 길었던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공황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봅시다.


대공황은 미국의 과거 역사 중 가장 길었던 경제 위기로 1929년부터 1939년까지 1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의 경제는 호황기였고 이를 누리던 세계 경제가 1920년대 말이 되면서 실물 경기 하락을 맞이하였습니다. 

1929년 10월, 법원에서 해트리 그룹의 파산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면서 약 2,400파운드의 가치가 월스트리트 폭락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에 월스트리트의 주가가 갑작스럽게 폭락하였고 그 영향으로 세계적인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공황 그때 당시, 미국의 GDP는 30~40%가 줄었으며, 독일은 노동자 44%가 직장을 잃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공항 이후 3년 동안 미국의 시가총액의 88%가 줄었습니다.


대공황 사건
1870년대, 1890년대의 경제 불황에 의한 압력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그것을 잡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국내총생산이 나아지는 듯하였으나, 5년이 채 못가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경제적인 활동은 1929년 중반, 여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1933년 국내총생산은 25% 이상 하락해 이전의 경제성장을 다 무마시켰습니다. 산업 생산율은 더 심각한 영향을 받아 50%까지도 떨어졌습니다.

대공황은 1933년에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천천히 회복되어서, 대공황이 끝난 거 같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실업률을 평가했고 1933년에 실업률은 25%를 넘고 1940년대에는 14% 정도였다고 하는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실제적으로도 적은 수치인데, 몇몇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은 본인이 실업자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낙향한 사람들도 실업률에서 빠졌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도 근무 시간이 줄어 기존 1920년대에는 주 근무 시간이 47시간 정도였으나, 1934년에는 41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주가가 하락하자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고, 그 원인으로 도산하는 은행이 많았습니다. 
대공황의 피해는 국민, 기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컸으나, 중산층 또한 피해를 보았는데 기업은 인건비를 줄 수 없었고, 실업자들은 돈이 없어 음식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들도 피해를 보았습니다.

1920년대는 경제 호황기로 눈부신 성장을 하였는데, 그때 발달한 자동차 산업, 건축도 대공황 시기에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20년대에는 발명품도 많았지만, 대공황 시기에는 거의 없었고, 20년대에 대량으로 만들었던 혁신적인 상품들, 라디오 같은 것들은 대공황 이후 방대한 재고가 쌓여 기업에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대공황의 원인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문제에 더하여 사회와 경제를 보는 이념과 같은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어, 과거 사건에 한정 짓는 논쟁을 넘어서는 현재의 논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네온케이지언은 절제하지 않는 시장경제의 근본적인 한계가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소비가 우연히 줄었다는 논쟁도 있고, 스무트-할리 관세법 등에 기초하여 보호무역을 했었던,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관여했던 국가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첫 번째.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국가들이 금본위제도로 돌아간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폐 평가를 과대하게 하여 각 국가의 수출 시장의 축소를 야기했습니다. 사실상, 1928년 말 이후부터 전 세계 실물 경기는 폭락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첫 번째 원인으로 인하여 과도한 보호 무역론이 대두되었습니다.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근린 궁핍화 정책은 근시안적인 규칙입니다. 하지만 세계는 경제적으로 더 강하게 연결되어있어, 결국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 번째.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 부흥을 저지하고자 베르사유 조약에서 방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은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해 지급 능력이 있다고 하였고, 이에 따라 독일 경제는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해 파탄이 났습니다. 이는 연쇄적으로 유럽경제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네 번째.
'협상 가격의 위기'를 원인으로 둘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가위 사태'이며 여기서 가위의 의미는 수요 공급 곡선의 기울기가 극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공산품 가격의 상승과 농산물 가격 하락의 결과이며 이는 경제학자들도 10년 전에 예견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광산업 등 1, 2차 산업에서 소비재 등의 신산업으로 변화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결과로 '신산업'은 경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TV가 처음 출시 되었을 때의 충격과 관련 주식은 닷컴 버블 시절보다 더 심했습니다.

여섯 번째.
위의 다섯 가지들을 저지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지출 가설, 통화 가설, 먼델-토빈효과, 유동성의 함정 등의 원인이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