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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일반 정보

경제사상사란?

by 오브_ 2023. 2. 6.

 


경제사상사 또는 경제학설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나타난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의 기반 사상들에 대한 역사에 관한 학문입니다. 크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경제관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근대 경제사상에 대해서는 고전학파, 고전 경제, 대표적인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의 경제사상 및 이론을 주 연구 대상으로 합니다.


경제사상 초기
현대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서는 고대 인도의 재상 차나키아가 서술한 아르타샤스트라입니다. 플라톤이 쓴 '국가'에 등장하는 노동 층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를 경제사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영국의 계몽주의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경제 문제에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데이비드 흄, 존 로크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중상주의 의견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는 무역의 균형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흄은 수출의 이익은 모두 은과 금의 수입으로 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흄의 주장은, 통화의 공급을 상승시켜 가격이 오르게 할 것이고, 이는 다시 수입과 균형이 돌아올 때까지 수출의 감소를 야기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버나드 맨더빌의 주요 논의 주제는 인간의 행동은 더 귀한 것과 천한 것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소중한 삶은 사회와 정부가 관계를 단순히 하기 위하여 통치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이야기된 단순한 허상입니다. 사치스러운 생활과 연관하여 자본의 유통과 발명을 통해 사회를 진보로 자극하는 것은, 바로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중세 시대를 지난 유럽에서 국가 경제의 실제적 사상과 정부 정책을 내놓았던 경제 이론입니다. 중상주의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지배적인 사상이었습니다. 다른 탐험가들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15세기 항해 이후, 아시아와 신대륙과의 무역을 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고, 새롭게 권력을 잡은 군주 국가들은 그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더 강한 군사 국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중상주의는 국가의 군사적 힘을 이용해 지역 시장과 공급원이 보호되도록 하는 정치적 운동이자 경제적 이론으로 보호주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귀금속과 돈이 유일한 부이며, 한정적인 자원을 국가들에 배분해야 하므로 관세는 수출을 장려하고, 해외로 돈을 보내는 수입을 억제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상주의 이론가들은 국제 무역이 모든 나라에 동시에 이득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농주의
중농주의는 왕의 재화의 입출과 회계를 체계적으로 처리하는 왕의 제정 고문입니다. 이들은 회계와 경제적 개념 발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랑수아 케네는 산업과 무역이 부의 기반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임금, 임대료, 구매로 경제를 통해 유입된 농업의 흑자가 진정한 경제적 이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규제는 모든 계층에서 소득 흐름을 방해하고 경제 발달을 억제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농부 같은 생산 계층의 세금은 토지를 소유한 사람과 같이 비생산적 계층에 대한 상승에 유리하게끔 줄여야 하는데, 그들의 사치적 생활방식이 소득의 흐름을 옳지 않게 하였습니다.

자크 튀르고는 케네의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를 세 계층으로 나누었는데, 생산적 활동을 하는 농업 계층, 봉급생활하는 계층, 토지를 소유한 계층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는 토지의 순수한 생산에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산업과 상업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였습니다.

 

 


고전 경제학
가장 대표적 인물은 애덤 스미스입니다. 그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776년 발간된 '국부론'은 프랑스 혁명, 유럽 모든 지역의 급변 직전에 미국의 혁명과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큰 규모의 부를 이룰 수 있게 해준 새로운 산업 혁명의 시초와도 일치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도덕을 주제로 연구한 철학자였으며, 그의 첫 번째 책은 '도덕 감정론'이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서 사람들의 윤리적인 체계는 다른 개개인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하고, 옳고 그름은 한 개인의 행동에 대한 다른 인간들의 응답을 통해 감지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간했을 당시에 각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개개인의 경제 활동을 제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수출입 규제, 세금 등은 올바르고 체계적인 이론적 바탕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미스는 시장의 스스로 하는 조정 능력을 강조하였고, 개인이 사적인 이득을 추구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사회의 전체적인 이득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국가가 개인의 경제적인 부분에 관여하지 않아도 시장 자체의 가격 조정을 통해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시장의 자생 능력, 이러한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미스는 노동을 나눠서 하는 분업의 이로운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였고, 노동가치설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국부론 이후로 여러 학자의 스미스 이론을 계승하여 분배 이론, 가치론, 국제 무역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였습니다.


제레미 벤담은 급진적 사상가였으며, 공리주의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벤담은 교도소 개혁자, 무신론자, 동물 권리 운동가였으며, 자유무역, 건강보험, 언론의 자유를 지지한 사상가였습니다. 1789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 시론'에서 그의 효용 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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